풀옵션이 무려 1억 인 국내 전기차 등장
G80에 전기차가 나온 것이 꽤 의미 있는 일이다. 레이 EV에서 시작해 최근 아이오닉 5와 EV6까지 만든 현대차 그룹이 드디어 5미터짜리 대형 전기 세단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전기차 기술에 대한 현대차 그룹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의아한 점은 제네시스에서 아직도 이 차의 구체적인 모델명을 안 붙였다는 것. e G80도 아니고 G80 ev도 아니고 그냥 G80 전동화 모델(ELECTRIFIED G80)이라 부를 뿐이다. 제네시스는 진작에 특허청에 '기존 모델명 앞에 e를 붙이는' 상표권을 등록한 상태인데, 가능한 한 빨리 정식 이름을 붙이는 게 여러모로 좋을 듯하다.
디자인은 G80과 대동소이
기존 G80을 개조한 전기차 모델인 만큼, 실내외 디자인에 큰 변화는 없다. 전면부 그릴을 막았는데, 다이아몬드 패턴 절묘하게 사용해 충전구 자리를 만들었다.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개조한 모델들은 대부분 그릴에 충전구를 넣는다. 전기차 전용 모델의 충전구가 측면, 또는 측후면에 위치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구조적 문제와 비용적 문제가 더해지면서 최대한 편하고 쉬운 자리를 찾았는데, 그게 아마도 그릴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단 범퍼는 공기 흡입구 부분을 줄이고 에어 커튼이 돋보이는 디자인이 새롭게 적용됐다. 후면부는 머플러가 사라지면서 범퍼 디자인이 조금 바뀐 것을 제외하면 달라진 게 없다.
실내에도 천연염료를 사용한 가죽과 나무 자투리를 이용한 우드 트림이 들어갔을 뿐 나머지 디자인 요소는 그대로다. 대신 3D 계기판과 중앙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는 충방전 상태, 주행 가능 거리, 인근 충전소 위치 등 전기차를 위한 전용 정보창이 추가됐다.
전기 차면 가장 중요한 모터 성능
실내외 디자인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그래도 두근거렸다. 이 차는 누가 뭐래도 제네시스에서 만든 첫 번째 전기차가 아닌가. 설레는 마음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너무 굼뜨고 답답했다. 마치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혹시 킥다운이 있는 게 아닐까?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봐도 변화는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제야 시승 전 행사 진행 요원이 드라이브 모드를 설정하겠다며 뭔가를 누르고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확인해 보니 역시나 에코 모드였다. ‘이런 꼼수(?)가’ 이란 생각과 함께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다시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가 확 달라졌다. 등이 시트에 파묻히며 시승 전 기대했던 G80 전기차의 강력한 성능이 온몸에 그대로 전해졌다. 전혀 다른 차라고 생각될 정도로 드라이브 모드에 따른 주행 성능의 차이가 확연했다. 출발 전 에코로 바꿔준 이유도 이런 차이를 조금 더 극단적으로 느껴보라는 제네시스 측의 지나친 배려(?)였나 싶다.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G80 전기차는 AWD, 즉 사륜구동 모델만 나온다. 그런데 좀 신기하다. 일반적으로 사륜구동 방식의 전기차는 후륜에 더 큰 모터를 달고, 이 모터를 중심으로 달린다. 같은 현대차 그룹에서 나온 아이오닉 5와 EV6도 전륜에는 70kW, 후륜에는 160kW 등 다른 모터가 달린다. 반면 G80 전기차는 앞뒤에 똑같은 모터가 장착했다.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 부분이다. 제네시스 측에 따르면 G80 전기차에는 '전륜에 모터와 구동축을 주행 상황에 따라 분리하거나 연결할 수 있는 디스 커넥터 구동 시스템(DAS)'이 탑재됐다. 2WD와 AWD 구동 방식을 자유롭게 전환함으로써 불필요한 동력손실을 최소화하고 주행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그럴수록 후륜 모터의 역할 중요하고, 모터 크기가 더 커야 하는 게 아닐까.
어쨌든 성능은 만족스럽다. 최고출력 184마력(136kW), 최대토크 35.6 kgf·m(350Nm)가 각각 앞뒤에 하나씩 장착돼 합산 출력 370마력(272kW), 합산 토크 71.4kg.m(700Nm)를 낸다. 출력도 출력이지만, 강력한 토크가 시작부터 높은 회전수까지 꾸준히 나오는 덕분에 출발부터 고속 영역까지 시종일관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G80이 아무리 좋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무겁고 느린 차’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전기차로 바뀌면서 이런 결핍도 사라졌다. 제네시스 측에서도 스포트 모드 기준으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9초 만에 도달한다고 밝혔다.
변화된 인테리어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시트 포지션이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내연기관 모델보다 높다고 느껴졌다. 뒷좌석도 마찬가지였다. 87 kWh나 되는 배터리를 넣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높아졌구나 생각했는데, 제네시스 측으로부터 기존 모델과 같다는 내용의 대답을 들었다. 지상고는 그대로인데 전고가 10mm 높아지면서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는 것이다.
전기 차임에도 불구하고 뒷좌석에 센터 터널이 버젓이 살아남은 것은 아쉽다. 내연기관을 중심으로 개발된 플랫폼인 데다가, 이를 제거하고 새롭게 만들려면 많은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제네시스 측은 “꼭 필요한 것은 바꾸었지만, 안 바꿔도 되는 부분은 그대로 살렸다”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전반적인 주행감은 만족스럽다. 단순히 주행 성능뿐 아니라 승차감, 특히 정숙성이 인상적이었다. 전기차의 경우 엔진음과 배기음이 없어서 정숙성에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워낙 조용하기 때문에 주변 소음, 풍절음, 노면 소음 등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G80 전기차는 전체 유리를 모두 이중접합유리를 적용해 주변 소음과 풍절음을 잘 막아냈고, 액티브 로드 노이즈 컨트롤을 통해 노면 소음도 상쇄시켰다.
1회 완충에 427km 좀 적은 감이?
G80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427km로 아이오닉 5(390km) 보다 길고 EV6(441km) 보다 짧다(모두 19인치 AWD 기준). 단순하게 숫자만 보면 아이오닉 5가 별로고 G80 전기차가 좋아 보인다. 그런데 이런 주행거리 차이는 기본적으로 배터리 용량에서 나온다. G80 전기차의 배터리 용량은 87.2 kWh로, 아이오닉 5(72.6 kWh)와 EV6(77.4 kWh) 보다 훨씬 크다.
여기에 모터의 성능, 차의 무게, 공기저항계수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G80 전기차는 4.3km/kWh, 아이오닉 5는 4.7km/kWh, EV6는 4.9km/kWh다. 배터리 1 kWh당 주행거리로, 숫자가 클수록 효율이 좋은 것이다.
제네시스 측은 350kW급 초고속 충전 시 22분이면 10~80%를 충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다. 차는 가능할지 몰라도,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350kW급 충전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사 350kW급 충전기가 있더라도 여러 대를 동시에, 그리고 바로바로 충전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대신 멀티 급속 충전시스템을 선보였다. 400V의 일반 충전기에서 충전하더라도 구동 모터와 인버터를 이용해 800V 충전이 가능한 ‘승압 충전 기술’이다. 충전 전압이 2배로 올라간 만큼 충전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대신 운전 성향에 맞게 브레이크의 제동감을 조절할 수 있는 브레이크 모드도 탑재됐다. 컴포트와 스포츠로 변경 가능하다. 회생제동은 4단계로 나눠 멈추는 정도를 조절했다. 패들 시프트를 이용해 4단계에 맞추면 계기판에 i-PEDAL이라는 표시가 뜬다. 가장 적극적으로 회생제동을 하는 단계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강하게 멈춘다. 누가 뒤에서 잡아채는 느낌이 들 정도다. 꾹 참고 i-PEDAL 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주행했더니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멈추는 강도를 조금 더 정교하게, 부드럽게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대의 솔라루프, 아직은 좀..
태양광을 이용하는 솔라루프도 적용됐다. 다행히 단일 옵션으로, 원하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솔라루프가 들어가면서 선루프 아예 사라졌다. 많은 소비자들이 아쉬워할 부분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솔라루프보다는 선루프 선택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이에 대한 제네시스 측의 답변이다. 배터리를 바닥에 깔아야 하는 전기차의 특성상 실내 공간이 다소 부족할 수 있다면서, 선루프를 넣으면 그만큼 필요한 부품이 들어가 머리 공간을 차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트 포지션을 물어봤을 때와는 반대되는 답변이어서 다소 혼란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현대차 그룹의 솔라루프를 응원한다. 비용 대비 효율을 떠나, 앞으로 점점 중요해질 태양광에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내 주차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소비자에게는 추천하긴 어렵다. 제네시스 측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하루에 평균 730Wh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다(1일 평균 일조시간 5.8시간 기준). 이는 연간 1150km를 달릴 수 있는 에너지로, G80 전기차를 3번 완충하면 나오는 숫자다. 충전비를 kWh당 500원으로 잡아도 12만 원. 12년은 타야 본전을 뽑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제일 중요한 가격, 풀옵션이 무려 1억
가격도 고민거리가 될 듯하다. G80 전기차의 가격은 8919만 원이다. 9000만 원을 넘을 것이라는 기존 예상과 달리 몇백만원이라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9000만 원 이하로 맞춘 것이다. 덕분에 보조금을 받으면 8400만 원 정도로 내려가는데, 그래도 G80 3.5 가솔린 풀옵션(약 8500만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추가 옵션도 많다. 들어가는 옵션을 모두 더하면 1580만 원. 인기 있는 몇몇 옵션만 넣어도 9000만 원 훌쩍 넘고, 풀옵션을 선택하면 9970만 원이 된다. 아무리 기본 모델의 사양이 좋다지만 옵션은 언제나 참기 힘든 유혹이다. 시승차만 해도 140만 원의 솔라루프와 70만 원의 스페셜 외장 컬러만 빠진 모델로, 가격은 9700만 원이 넘는다.
위로는 G90이 있고 옆으로 GV80이 있겠지만, 제네시스의 상징은 누가 뭐래도 G80이다. 브랜드 이름도 G80의 원래 차명인 제네시스에서 따온 게 아닌가. 처음에는 E-GMP 플랫폼으로 만든 새로운 전기차가 아니라는 게 단점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시승하면 할수록 G80을 베이스로 만든 게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단단한 차체에서 나오는 안정감, 고급스러운 실내 소재와 사양, 완성도 높아진 R-MDPS, 전방을 예측하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 최첨단 안전·편의 사양까지. 완성도와 상품성만 놓고 따지자면 최근에 나온 새로운 전기차보다 오히려 더 뛰어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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